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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3. 1. 2. 18:15

술 구매

의레 모든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신년이 되자마자 편의점에 술을 사러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주류를 구매할 수 있었는지라 구매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담배는 피우지 않더라도 술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조금 긴장되긴 했으나 집 근처 CU에서 별문제 없이 신분증을 보여주고 구매했다. 편의점에는 익숙한 소주, 맥주부터, 최근에 주류세법 개정으로 활발해진 수제맥주, 와인과 샴페인 같은 각종 양주들까지 즐비했으나, 미리 위스키 종류로 추천을 받아둔지라 한병남은 잭다니엘로 결정해 거금을 주고 구매했다.

잭다니엘잭다니엘

잭다니엘의 맛

처음 산 술인 만큼 맛이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스트레이트로 그냥 한 모금 가득 마셨고, 바로 입안과 식도가 불타는 느낌을 느낀 뒤에, 위가 뜨끈해지며 침을 질질 흘리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술이라곤 먹어보지 않은 핏덩이가 먹기에는 너무 강한 도수였던 것이다. 맛도 느끼지 못하고 혀가 마취약을 먹은것마냥 둔하고 혀끝이 아릿한 느낌이었다. 인간은 실수에서 배우는 존재이라고 했던가, 코카 콜라를 사 와서 잭콕을 만들어 먹었다, 물 마시는 컵에다가 2/3쯤을 콜라로 채운 후, 나머지 1/3을 잭다니엘로 채운 후에 먹었더니, 약간의 알코올? 위스키? 향을 제외하고는 먹을만했다.

 

불위주곤

 잭콕도 만들겠다, 유튜브를 안주삼아 혼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스트레이트로 먹었을 때보다 훨씬 먹을만했지만, 여전히 응애 입맛인 필자한테는 쓰고, 단맛이 모자랐으며, 역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여전히 독해서 반모금씩 조금조금 먹어가며 유튜브를 한편, 두 편 보다 보니 어느새 졸릴 때 같은 몸상태인데, 피로감은 없으며,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멍하고 띄엄띄엄 기억나는 상태가 되었다. 취한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가 안 갔으나 한번 취하니 웃음이 쉽게 나고, 우울하고 근심 걱정이 날아간 듯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처음 술을 마셔보니 자기 주량을 몰랐고, 숙취도 별로 심하지 않다고 들었기에 난 계속해서 달렸다. 그랬으면 안됐다.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으나, 계속 마셔댄 결과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 2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잭콕을 만들어먹을 콜라도 다 먹었고, 스트레이트로는 마시고 싶지 않으니 흔들거리는 몸을 침대로 이끌어 잠을 청했다. 중력이 마음대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었으나, 내 방은 그리 넓지 않았기에 침대에 눕는 데 성공했다.

 

숙취의 시작

그렇게 잠들었다가, 새벽에 한번 깨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예상하는 대로, 그건 꿈이 아니었다. 누런 장판 위에 타르라도 끼얹어놓은 듯, 시컴언 것이 보였다. 잭콕을 토해놓은 거였다. 가장자리는 말라서 딱딱해지고, 가운데는 아직 따끈따끈하게 다시 마실수도 있을 만큼 질펀했다. 평소 위가 좋지 않아 자주 토하는 편이었어서 그런지 짜증나진 않았다. 발에도 토를 밟아 무장색 패기를 두른 것처럼 검고, 그 상태로 이불에 들어가 똥이라도 싼 듯 누런 자국이 남았어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진짜 짜증나진 않았다.(진짜임) 그러나 아직 지옥은 시작도 안 했다.

마신량
처음 마신양( 재활용 마크 있는곳 까지는 있었던거 갇다)

 화장실에서 발에 달라붙은 토사물만 씻어내고, 해장라면으로 해장을 하려다가 속이 약간 더부룩한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더부룩한 건 많이 겪어본지라, 라면 한 봉지를 꺼내두고 진정될 때까지 거실에 앉아 '해장라면 효과', '해장라면 위에 좋은가요'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때 물이라도 한병다 마셨어야 했다. 이놈이 숙취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후까지 아무것도 못 먹고 누런 담즙을 토해냈기 때문에!!

 한참을 매슥거리고 토한 후에야, 물을 조금 마시는게 가능했지만, 고작 몇 ml의 물로는 이 씨발거를 해소해낼 수 없었다.  평소에는 버벅거리던 머리도 생존의 위협을 느꼈는지 인터넷에서 숙취해소의 메커니즘을 빠르게 이해했고, 물과 당분을 섭취하려 노력했다. 토하지 않는 선에서 물을 마시고, 당분을 섭취할만한게 바나나우유밖에 없어서 그것도 마시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길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빠르게 분해되도록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뜨거운 어지러움과 구역질을 견디고 나서, 여전히 어지러웠다. 숙취해소제를 사 먹고 약국과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으려고 옷을 찾으니, 방구석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탄의 똥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치우고 가기로 마음먹고 물티슈로 치우기 시작했으나, 이미 말라비틀어진 부분은 힘을 박박줘서 닦더라도 잘 떨어지질 않았다.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와 뿌려서 불린 후에야 적당히 끈적거리는 상태로 수습할 수 있었고, 나중에 전동 물걸레로 몇 번을 닦고 나서야 끈적이지 않았다.

 

그 후

치우면서 방에 비닐봉지에 토했어도 됐을 텐데 확실히 술을 먹으니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걸 통감했다. 나중에 술 마시고 큰 실수 저지르는 걸 액땜한 셈 치며, 밖에 나가려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그럴 만도 했지. 장장 14시간을 굶었으니, 평소였으면 배고파 미칠 지경이었겠지만, 잭다니엘 이 씨발것을 처마시고 주화입마라도 걸린 것처럼 기혈과 내장이 꼬이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감히 식사를 할 순 없고, 빵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곤 토할 준비를 하고 잇었는데 어랍쇼? 속이 쑤욱 풀리며 게눈 감추듯 빵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빵을 먹고 난 후에도 약간은 메슥거렸지만, 충분히 무시할만한 수준이 된 것이다!  

불고기

그 후로는 알코올 향만 맡더라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술병만 보더라도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든다. 근데 비싸서 버리지는 못하겠고 요리에 써먹으려니 위스키를 사용하는 요리는 없다. 위 사진은 불이나 붙여보자는 생각으로 붙여본 것이다. 활활 잘 타고 고기까지 구워진다. 3만 1천 원짜리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맛있다

이 글을 읽는 애주가중 한 명은 '저 비싼 걸 태우노 ㅉㅉ 그럴 거면 나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안다. 나도 딱 한점 구워 먹고 아까워서 짱박아둔 채로 내 술미각이 확 깨어나는 사건이 일어나길 빌고 있기에 너무 머라 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참고로 고기는 맛있었다.

 

여담

자그마치 반병 가까이나 처마신 숙취치고는 젊은 간이 일을 잘해주어서 그런지 두통은 없었다.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이 있었더라면 난 자살하는 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술을 아예 못 마시진 않겠지만, 몇 달간은 처다도 보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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