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 맥스 입문

평소에 리듬게임을 싫어하진 않으나, 키로 치는 리듬게임류는 어려워서 잘 도전하지 않는다. 도전이라는 게 어려운 인간이, 즐기려고 하는 게임에서도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은, 몹시 짜증 나고 귀찮은 일인지라, 4 키니, 5 키니 하는 리듬게임들은, 오래전부터 오락실에서조차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시작한 것이었나? 스팀에서 매년 반복하는, 여름세일을 뒤져보던 도중에 80%라는 무지막지한 할인율을 보았음이 첫 번째요, 아는 사람이 같이 하지고 꼬신 것이 두 번째였으리라.

 

 

 

첫 플레이

아무리 80%라도 살 마음이 없었다. 한국 개발사인 네오위즈인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노트를 치는 리듬게임은 손이 버벅거려서 치지도 못할 거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인이 하자고 하니, 2시간만 맛보고 환불할 생각이었다.

 

필자의 첫 1시간은 쉬운 곡을 겨우겨우 처가며 손가락을 적응시키는 수준이었으나, 리듬게임을 처음 입문하는 줄 알았던 지인은 리듬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경력직이었으며, 잠시 적응기간을 가지더니 매우 높은 난이도의 곡들을 클리어하는 것이 아닌가. 

디맥

그에 비해 난 가장 쉬운 난이도를 6키로 하면 좋다는 말 하나를 믿으며 치욕의 시간을 보냈다. 노인이 타자를 배우듯, 아기가 걸음마를 띄듯, 아주 조금씩, 조금씩 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미 알던 곡을 넘어, 디맥 안의 다채롭고, 감미로운 노래들에 적셔져 가며, 이미 두 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점심 먹고 시작해, 저녁을 먹고 또 했다. 재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감정을 느끼며, 싱글모드로도 해보고, 뉴비방을 파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뉴비공방이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갓 30 레벨이 된 내가 묻는 질문들을,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너그러이 받아주셨던 고인물분들, 밥 먹고 돌아온 지인. 그들과 몇 판을 진행하면서, 난 이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환불하기에는 시간도, 정신도 늦어버린 상태. 돌이킬 수 없었다. 난 경력직분들의 꾐을 따라, 세일하지 않던 Extention 4를 제외하고, 모든 DLC를 구매해 버렸다. 후회는 없었다. 왠지 모를 후련함이 남을 뿐.

 

 

본격적인 디악귀의 삶

DLC도 모두 구매했겠다.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자주 하던 FPS게임들도, 포르자 호라이즌의 코닉세그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주왕이 달기를 찾듯, 매일매일 디맥을 켰다. 9시간을 하는 날도 있었다. 손가락의 관절을 움직이는 힘줄이, 마치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현처럼 멋대로 될 때까지 디맥을 했다. 

 

아아,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리라. 

맥스 콤보퍼펙트 플레이
ㅐㄱ스 

디맥근이 자라날수록, 내 실력 또한 나 같은 둔치도 느낄 정도로 나날이 늘어갔다. 맥스 콤보도 찍어보고, 퍼펙트도 한 번이지만 해보았다.  전문가들이 게임중독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한 가지로, 현실에서는 느끼기 힘든, 성장의 변화를 수치화시켜서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맞는 것 같았다.

 

디맥 같은 리듬 게임은 RPG처럼 얼마가 얼마만큼 증가했고 스펙이 이렇다고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제는 클리어하지 못한 곡을 처냈을 때의 쾌감, 어제의 나는 보지 못했던 노트를 보는 경지, 덜 버벅거리고 나의 의지대로 완벽히 손이 움직일 때는 마치 숙련된 피아니스트 같은 쾌락까지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히 존재하는 성장이라는 것을 확실히 채감하는 경험을 느껴보았다.

100레벨

그러다 보니 어느덧 100 레벨, 2주가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디맥에서 배운 삶

S등급 맥콤 쉽게 달성

내 삶은 디맥을 하기 전과 디맥을 시작한 후로 나뉜다. 새로운 취향을 알게 되었으며, 이제 10 레벨 미만에서는 어느 정도 정확도가 나오는 나 자신을 보며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 굳이 남과 경쟁하려들 필요조차 없는 게임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의 소우주는 확장되어, 명확해졌다. 비단 게임인 디맥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진짜 경쟁할 필요가 있는 건 사회도, 사상도, 비슷한 스펙을 가진 라이벌도, 악의에 가득 찬 사람도 아니다.

 

정말 경쟁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어제의 나 자신뿐.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며,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다 보면, 경쟁에 과열될 순간을 느낄 필요 없이, 과정만을 즐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치열한 접전

그렇게 즐기며 살다 보면 치열하게 남과 경쟁할 때도 있다. 남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승패로 나뉘지 않게 됨으로써 패배가 두렵지 않게 된다. 절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벽도, 거리파악이 되기 시작하며, 언젠가 넘어서게 된다.

물론 산 넘어 산이고, 벽마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럼 어떠한가, 그렇게 긴 시간 또한 즐거울 것이다.

 

 

디맥, 나의 삶.

디맥, 나의 기쁨.

디맥, 나의 빛.

디맥, 나의 어둠.

디맥, 나의 안식.

디맥, 나의 영혼.

아내들

디맥, 나의..... 사랑.

 

 

 

 

 

총평

리듬게임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접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세일을 끼더라도 십만 원이 훌쩍 넘는 DLC팔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리듬게임도 거의 그런 편이고, 곡들도 만족스러우나, DLC 구매가 강제되는 게 싫으신 분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네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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